Waterloo
- 워털루 -
"워털루 전투와 나폴레옹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1815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벨기에 워털루에서 벌어졌던 세계사에서도 유명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의 월링턴 장군 및 러시아, 프로이센, 네덜란드 등 동맹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역사적인 워털루 전투상황을 재밋게 각색해 볼께요.....*^^*
▲ 워털루 전쟁기념관의 파노라마 그림
전 유럽을 제패하여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의 군대는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면서 세력이 급격히 기울어져, 1814년 3월 러시아 전쟁에서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군이 합세한 동맹군에 의해 대패를 당하게 되고 파리를 점령당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대패한 나폴레옹은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ㅡ_ㅡ;;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 유배된 뒤 루이 18세의 폭정에 신음하던 파리 시민들은 유럽대륙을 휩쓸었던 나폴레옹 시절을 다시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니깐.....
구관이 명관이야.....
미워도 다시한번.....
여보! 모든 것 용서할테니 돌아와 줘용.....^o^
나폴레옹은 이러한 여론을 이용해 그 이듬해 1815년 2월 26일 1,000여 명의 충직한 부하를 이끌고 다시 파리에 입성하게 되고, 시민들과 옛 부하들은 "황제 만세"를 외치며 그를 환영하였고, 왕관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죠.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은 즉시 재정을 정비하고 공격 준비에 박차를 가합니다.
나폴레옹의 재집권은 전 유럽을 경악시켰으며, 영국, 오스트리아 등은 모든 힘을 기울여 나폴레옹을 퇴진시키고 말겠노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프랑스와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네덜란드, 프로이센 동맹군은 해산하지 않고 국경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그 규모가 100만 명을 넘었어요.....
따라서 나폴레옹의 재집권을 구실로 언제 다시 파리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촉측발의 상황이었거든여......
나폴레옹은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프랑스군은 영국의 명장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네덜란드 등이 뭉친 막강한 동맹군과 싸울 수 밖에 없었어요.....
나폴레옹은 동맹군이 다시 파리를 선제 공격하기 전에 이들을 격파하기 위해,
드뎌∼☆
1815년 6월 11일 12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프로이센군이 포진하고 있는 샤를르로이를 향해 파리를 떠나게 됩니다.
그의 수하에는 뮤라, 다부, 슐트, 그루시, 네에 등의 용맹한 장군들이 있었으나,
가장 유능한 다부에게 파리 수비의 임무를 맡기고, 용맹스럽기는 하나 지략이 좀 부족한 ‘네에 장군’을 선두로 하여 원정에 나서게 됩니다.
와글 와글~ 와~ 와~ 무찌르자 동맹군, 승리는 프랑스의 것.....
6월 15일 나폴레옹군은 샤를르로이를 점령하고 상브르 강을 건너 영국군과 프로이센군 대열을 분단시키기 위해 두 군대가 포진한 중간 지점인 까트르브라를 향해 공격에 나섰다.
나폴레옹의 계산으로는 두 군대의 중간 지점을 차단하고 양면 공격을 가하면 동맹군이 쉽게 와해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1815년 6월 16일, 나폴레옹은 먼저 블뤼허가 지휘하는 프로이센군을 리그니에서 격파시켰다.
프로이센군이 퇴각하자, 나폴레옹은 그루시에게 프로이센군을 추격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따라 그루시는 바브르 방면으로 후퇴하는 프로이센군을 추격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정적 패인이 될줄은 나폴레옹은 꿈에도 몰랐겠죠.
이어서 나폴레옹은 까트르브라를 향해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6월 17일까지 계속된 이 전투는 '네에 장군'의 느린 기동력과 순발력, 떨어지는 미흡한 판단력, 폭우를 동반한 악천후와 나폴레옹의 약해진 체력으로 인해 결국 까트르브라를 점령하지 못합니다.
한편, 영국군은 6월 17일 후퇴해서 워털루에 도착하였으나, 웰링턴 장군은 단독으로 나폴레옹의 주력군과 싸울 자신이 없어서 계속 후퇴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브르에서 블뤼허 후위군 1만 7,000명이 그루시 군대를 저지하는 동안 블뤼허의 주력부대는 위기를 벗어나 웰링턴 군대와 다시 합류하기 위해 워털루로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루시 장군은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의 주력군대가 워털루로 진군하는 것을 모르고 남아있는 나머지 후위군을 뒤쫓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어요.
웰링턴 장군은 아직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도착하기 전이었지만, 6만 8,000명의 병력을 워털루 일대에 포진시키고, 6월 18일에는 나폴레옹의 주력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결전의 날 6월 18일.
이 때 그루시는 새벽 4시에 편지를 통해 나폴레옹에게 다음 작전행동을 묻게됩니다.
나폴레옹은 6시간 후인 오전 10시에 '바브르 방면으로 계속 진격하여 프로이센군을 압박하라.' 라는 답장을 보냅니다.
근데 결전의 날 아침 나폴레옹의 공격이 지연된 것은 간밤에 내린 많은 비로 인해 온통 진흙탕이 되어 군대가 공격하기 어려웠고 악천후가 계속되는 등 시계도 불투명했기 때문이죠.
결국 공격이 지연됨에 따라 블뤼허의 주력부대가 웰링턴 군대와 합류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결정적인 패배의 원인을 초래하고 말았어요.
아침이 되자, 나폴레옹은 아침식사를 끝낸 뒤 회의를 소집했다.
이때 곁에 있던 슐트 원수가 나폴레옹에게 건의했다.
"폐하. 프로이센 군대를 쫓고 있는 3만 3천명 그루시의 군대를 불러들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지금의 병력만으로는 웰링턴을 완전히 제압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들이 모두 한번씩 웰링턴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슐트는 스페인 전역에서 웰링턴에게 패배했었다) 웰링턴이 훌륭한 장군이 되는 건 아니네. 웰링턴은 못난 지휘관이야. 영국군은 형편없는 군인들이고. 이 전투는 아침식사거리 밖에 안될걸세."
이때, 첩보가 들어왔다.
'프로이센군이 바브르에서 돌아와 영국군과 합세하려 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코웃음을 쳤다.
"바브르에서 온다고? 너무 멀어서 제 시간에 못 맞출 걸! 그리고 프로이센군은 그루시가 알아서 처리해줄걸세."
나폴레옹은 그루시가 프로이센군을 막고있기 때문에 워털루까지 올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죠.
드디어 11시에 포격을 시작으로 나폴레옹군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은 그리 허술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집요하게 영국군을 공격했지만, 웰링턴은 밀리면서도 끝까지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에 나폴레옹은 '네에 원수'에게 기병의 돌격을 지시했다.
그의 공격은 거의 성공하는 듯 싶었으나, 막판에 영국군의 분전과 '네에 원수'의 결단력 부족(그는 막판에 후퇴령을 내렸다)으로 인해 무위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어쨋든 간에 영국군은 큰 피해를 입으며 패배의 기운에 빠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프로이센군이 접근해오고 있다는 황당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니?! 그루시에게 쫓기고 있어야 할 프로이센군이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그루시는 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기분이 든 나폴레옹은 오후 1시에 다시 그루시에게 "당장 돌아와 워털루로 근접해오고 있는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을 물리치라"는 내용의 편지를 급파했습니다.
이때 그루시는 뭘 하고 있었을까염.....ㅡ_ㅡ??
그루시는 명령에 따라 바브르로 계속 진군하고 있었어요.....
"바브르 방면으로 도주하는 블뤼허를 추격하라"는 나폴레옹의 답장 때문이었지요.....
이때 참모장 제라르가 건의했습니다.
"각하. 그 명령은 프로이센군을 추격하라는 것이지 바브르로 진군하라는 게 아닙니다. 포성이 울리는 방향으로 진군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루시는 "나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바브르로 진군한다." 라며 그대로 바브르로 진격했습니다.
결국 그루시와 그의 군단 3만 3천명은 바브르에서 적을 찾아 헤메게 됩니다.
즉, 후위군을 찾아 진군하였을 뿐, 블뤼허의 주력군대는 이미 워털루를 향해서 진군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나폴레옹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그루시는 대체 어디있는거야?!"
아∼놔∼☆
진짜 돌아버리겠다는.....●_⊙
결국 11시에 시작된 전투는 처음에는 프랑스군의 승리로 기우는 듯했으나 오후 1시경에 쫓겨났던 프로이센의 블뤼허 장군이 지휘하는 3개 군단, 6만명의 병력이 갑자기 우익에 나타나 웰링턴군과 합류하면서 전선은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최후의 반격으로서 최후의 결전을 감행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근위대를 투입시켰어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근위대는 모조리 전사함으로써 무위로 돌아갔죠.
밤 9시경에 프랑스군은 완전히 패배, 나폴레옹은 잔여 병력을 이끌고 패잔병이 되어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워털루 전투는 나폴레옹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습니다.
프로이센 군대를 추격하라고 보낸 그루시 장군의 3만 병력은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한채 말이죠.......ㅡ_ㅡ;;
한편, 그루시는 1815년 8월 19일까지 바브르에 머물면서 티엘레만 장군이 이끄는 프로이센군을 격파한다. 그리고는 다시 프랑스로 질서정연하게 철수했다.
그리고 곳곳에 산개한 패전병들을 규합하여 규율과 질서를 유지시킨 채 상당 규모의 부대를 다시 방어전에 배치시켰다.
그러나 얼마 뒤, 회한과 절망에 빠진 나폴레옹이 항복하면서 이 모든 것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루시는 나폴레옹의 충신 중 한명이었고 나폴레옹의 전투에 거의 참가하였으며 그는 도망친 뮤라와 달리 러시아원정 중에도 한마디 불평없이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 명장이자 충신이었습니다.
퇴각시에도 마지막까지 후미에서 추격하는 적을 막아 전열을 유지하였죠.
그루시는 비난할 수 없는 나폴레옹의 충신이자 능력이 출중한 장군이었죠..
하지만 신은 얄궂죠. 그루시는 그 단 한번의 실수로 나폴레옹 패망에 기여해 버리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ㅜ_-;;
그루시는 기병대장으로서는 정말 탁월한 최고의 장군이었으나, 군단장으로서는 냉철함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지략이 떨어지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워털루 전투를 한번 가정해 볼까요.....ㅡ_ㅡ??
1. 그날 비가 오지않아 아침 일찍 나폴레옹이 즉시 공격개시를 하였더라면,
블뤼허 장군이 지휘하는 프로이센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 전쟁은 이미 끝나있을 수도 있었음
2. 만일 그루시 장군이 올바르게 상황판단을 해서 즉시 나폴레옹에게 되돌아 와서 합류하였거나, 후위군과 주력군대를 모조리 싹 쓸어버렸더라면, 아마 인류의 역사가 바꾸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 나폴레옹은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추종자들과 함께 조용하게 살다가 1821년 5월5일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유해는 1840년 파리로 돌아와 개선문을 거쳐 앵발리드에 묻혔다.
▲ 엥발리드 전경 - Les Invalides
군사박물관과 황금색 돔 성당이 보이네여.....
▲ 군사박물관 뒤로 보이는 돔 성당
▲ 엥발리드 돔 성당 지하에 안치된 나폴레옹의 묘
▲ 알렉상드로 3세 다리 뒷쪽에 보이는 황금빛 엥발리드
| <무단 복제를 절대 불허합니다> |
💜💜💜
'✅ 기타지역 > 벨기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워털루 1편 - "나폴레옹과 웰링턴 장군의 격전지, 워털루" (1) | 2026.06.21 |
|---|---|
| 플랜더스의 개 - 앤트워프 성모마리아 대성당 (1) | 2026.06.21 |